Hug Room

사월이

취향/덕질

작년 4월 에버랜드에서 튤립을 샀었다.
폐장시간이 되어 나가고 있었는데, 땡처리 하듯 튤립을 팔고 있는 것을 어째선지 덥석 사서는 사월이라 이름 붙여줌. 4월에 샀기 때문에.
이미 꽃봉오리가 있던 그 애는 물과 햇빛 좀 주자 쑥쑥 자라서 겨우 며칠만에 꽃 색을 비추고, 만개했다.
햇빛 드는 창가에 세워두면 특출나게 목이 길어버린 그 애가 봄바람에 출렁거렸다. 등진 회벽에는 걔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그마저 동양화같아서 감상하기 좋았다. 어디서 본걸 따라 나무젓가락을 대로 만들어 기대어준다.


사월이는 빨리 핀 만큼 빨리 시들었다. 어느날 낮에 화분 흙 위로 마른 꽃잎이 산비해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이미 찾아본 바로 한국에서 거래되는 튤립은 거의가 한해살이로 개종되어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 줄 알아서 얼른 뒷산에 처분할 것을 생각하며 베란다 한 켠 그늘진 구석에 그 화분을 버려두었다.

나는 게을러서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화분은 그자리에서 축축하게 말라갔고 그리한지 금 어언 팔개월 쯤,
우연히 본 화분에는 싹이 무려 7개나 돋아 있었다.

내 가까이서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아 즐거웠던 마음은 잠시이고, 다시 키워볼까, 생각하자 기묘한 죄책감이 덮쳤다.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대했으면서, 그런 존재라고 여겼으면서 나는 얘가 시들자마자 아주 잠깐의 아쉬움과 함께 너무나도 빠르고 건조하게 연을 끊어버렸던 거다. 버려진 화분을 보면 떠오르던 봄날의 기억들을 내내 남의 사진 취급했던 거다.
나라는 인간의 얄팍함을 깨닫고 또 한번 수치스럽다. 스스로 좋아한다고, 소중하다고, 애정을 준다고 여기는 대상들에 진정으로 애정을 줘본 적이 있나, 내 애정은 너무 허위다, 그런 생각을 했다.
헤어짐과 같은 슬픈 일에 정말로 슬퍼하고
정을 주고
그걸 소중히 하고
내게 의미를 남기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또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되도록 나는 의식적으로, 후천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어쨌거나 현재의 성격으로 나는 주변에 무관심하다. 대상에 마음이 깊이 닿지 않고 감상과 감정은 순간적이고 휘발적이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 의미화 시키고 사랑하는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정말로 있다.
나중에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거나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되돌아보면 난 내게 있던 연은 모두 내가 먼저 끊어버렸다. 그런 식으로 흐릿해져버린 존재들이 많다. 가끔식 아쉽다고만 생각한다.

올해의 목표... 그런 것이 매년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2021년에는 생겼다. 3월이 가까워져서야.

표면적으로는 사월이를 다시 잘 키워볼것.
이유는 타자를 대하는 내 마음을 순수함으로 환골시켜보려고.
이 애가 무슨 형태를 하든 나는 마음을 줄 것이다.

그 날 기분에 취해 데려온 녀석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