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Room

요즘

일기

죄와 벌을 드디어 읽고 있다. 무거운 책이라 늘 무거운 마음으로 펼쳐서 절대 100페이지 이상을 읽지 못했던 바람에 이번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술술 읽힌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도 당시에는 대중소설이었지? 진정하게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나니 절레절레 이새끼 완전 젠지네 이 또라이새끼 다같이 튀겨졌구나 노답이네 지랄한다 하면서 재밌게 읽힌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정신병자들인지? 이것이 노문학의 매력?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매력? 신경쇠약에 피해망상에 조울증에 반사회성에 공격성에 피학성에 자기연민에 자기애에 존나 가지가지... 한순간은 목숨보다도 자존심을 택하다가도 한순간은 천하에 내가 제일 구질구질하고 못났다며 질질짜고... 근데 그 볼성사나움이 너무 인간적이고 자유롭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글을 쓸 때 별로 수정도 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후루룩 멋대로 갈겨썼을 거란 상상이 든다. 장황해서 그런가? 하여튼 말이 마구 터져나오는 문체이고 그래서 쫓아가기 바쁜대도 자유롭단 느낌이 든다.

이렇게 아주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독서나 좀 골몰해보니깐 평화롭기도 하다. 뭔가 착착 하면 착착 하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여러가지 물질을 매만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역시 좋다는 생각이다. 나도 워낙 이시대의 인간이라 일명 숏폼식 자극 숏폼식 중독이 아니면 어찌할 줄 모를 인간일 거 같았는데 요즘 하루에 집안의 한구역씩 정해서 대청소를 하고 있기도 하다. 어제는 베란다 오늘은 화장실을 했다. 내 숙원은 뒷베란다 청소이다. 거긴 미지의 공포와 추와 타락과 나태로 가득한 공간이다... 인간이 살면서 배출하는 오염이 모여서 방치되고 외면당한 위험구역으로 호시탐탐 자기를 창조한 인간을 충격으로 쓰러지게 만들 일을 고대하고 있는 사악이 도사린 1급 위험구역... 그곳을 청소해야하는데 그러려면 정말로 설계가 필요하다. 엑셀로 계획을 짜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뤄두고 있는 일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블로그 쓰는 것이었고 하나는 게임 만드는 일이다. 블로그에 쓰고싶은 것은 사실 이런 일기가 아니라 드라마 <소년의 시간> 감상후기와 경주여행기였는데. 사실 소년의 시간을 보고 그리 기록할만한 대단히 임팩트있는 감상이 생겼다기 보단 그냥 간략하게 나는 이 점에 주목했다, 고 말 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그리고 경주는 매우 충동적으로 갔던 것 치고 알차고 즐거웠고 사진을 많이 찍었기 때문에.

오늘도 이시간까지 잠들지 못했다. 잘 생각이 없었으니 당연하지만!! 그러나 나도 생활패턴을 정상화할 필요성은 느끼는데. 과연 될까? 이제 나는 나도 좀 남들처럼~ 하는 이유도 아니고 진짜로 수면부족이나 밤낮이 바뀐 사람들이 더 심장병에 걸맅 확률이 높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무서워서 생활패턴을 바꾸고 싶다.

잠들고 깨어나도 내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편하게 내일이라 쓴다. 내일 나는 뭘 할까? 모르겠지만 죄와벌은 읽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