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끝낼까 해 카우프만 감독 해설 번역(스포多)
취향/덕질넷플릭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카우프만 감독의 인디와이어 인터뷰 발번역. 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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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www.indiewire.com/2020/09/charlie-kaufman-explains-im-thinking-of-ending-things-1234584492/
Charlie Kaufman’s Guide to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The Director Explains Its Mysteries
If Kaufman's enigmatic Netflix drama has you scratching your head, fear not: The director has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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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프만 감독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해설해주는 편은 아니다. "저는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해석)을 가지길 장려합니다. 그래서 딱히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것도 없어요. 모든 사람들의 해석을 존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우프만의 난해한 레퍼토리중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만큼 사람들이 해답을 요구하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그의 <존 말코비치 되기> 와 <어뎁테이션> 각본은 남성의 문제적인 정신세계로 가는 괴이한 미로를 선사하는데, 이는 <시네도키, 뉴욕> 과 <아노말리사> 에서 감독으로서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넷플리스 제작작은 문제적 심리상태의 복잡한 디테일에 잠식된 스토리라인을 가진데다가, 그게 너무 복잡하게 널려 있어서 이 영화를 해석하려면 기호학 학위라도 필요할 정도다.
그건 의도된 것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는 캐나다인 작가 Ian Reid의 2016년작을 원작으로 하는데, 카우프만은 텍스트를 자유롭게 끌어내면서도 기본적인 스토리는 유지했다. -제이크는 새 여자친구 루시를 부모님에게 소개시키기 위해 함께 눈길을 운전해 간다. 제목이 내포하고 있듯, 화자인 루시는 이미 그와 헤어질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가능성을 품은 채 커플은 어색한 저녁식사를 견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눈길을 운전해 가지만, 제이크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중간에 들리게 된다. 그동안, 학교의 늙은 관리인은 외로이 일하느라 학교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다가, 마지막에 커플과 마주하며 초현실적인 클라이맥스를 맞게 된다.-
그 클라이맥스는 Reid의 심리 스릴러 원작과 크게 다르다. 원작에서는 그 순간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상태를 글자 그대로 표현한다(?). 반면 카우프만은 마지막 장면에 영화 전체를 모호한 상징기호에 흠뻑 담궈버린다. "<어뎁테이션>에서의 진보인지 후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뎁테이션>을 하면서 깨달은 게 전 뭐가 됐든 저자신에게 납득이 되는 걸 할 때가 가장 잘 된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안 하면, 결국 저에겐 죽은 작품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 결과 매우 촘촘하고 암시적인, 온갖 정보로 과적된 서사가 되어서, 누구라도 첫 관람에 모든 걸 흡수할 수는 없는 영화가 되었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의 관객들은 장면 하나하나를 해석하느라 머리가 불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사실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어린시절 썼던 방이 책, 영화 같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걸 보면 알 수 있듯 제이크는 그를 둘러싼 미디어에 너무나도 과몰입되어 그의 현실의 모든 부분을 미디어에 정복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이해하거나 의도를 느끼기 위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레퍼런스를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인 미로는 수수께끼라는 본질을 풍성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를 여러번 보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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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이크는 루시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오프닝 시퀀스에서 제이크와 루시는 제이크네 부모님의 집으로 향하는 지루한 드라이브를 견딘다. 그동안 루시는 계속해서 제이크와 헤어질 것을 고민한다. 루시의 그런 생각이 보이스오버 되는 동안 제이크는 루시의 눈치를 살피거나, 어쩔 땐 루시의 생각하는 목소리에 끼어들어 말을 자르기도 한다. 그가 텔레파시 초능력자인 걸까? 대답은 의외로 꽤나 심플하다. Reid의 원작 소설을 보면 제이크와 그의 이름 없는 여자친구는 사실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마지막에 밝혀진다. 외로운 학교 관리인이 그의 판타지 여자친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싸이코> 와 <파이트클럽>이 합쳐졌다고 생각해보라.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이 부분을 그리 긴 시간을 들여 잔뜩 숨겨놓지는 않는다. 루시가 저녁식사자리에서 그녀의 자작시 한 구절을 읊는데, 이는 사실 시인 Eva H.D의 "Rotten Perfect Mouth"라는 작품의 일부를 따온 것이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심지어 루시의 이름이 진짜 루시이긴 한지도 명확하지 않다. (제이크가 루시를 '에임스' 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이크가 그의 고립된 세계관을 구성해온 책들로부터, 영화들로부터, 지나치는 사람들로부터 그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럼 루시는 주요인물이지만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 영화의 가장 세련된 도박은 카우프만 감독이 이러한 장치를 가져다가 다음 질문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환상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가?" "환상이 환상의 관점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
"그녀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전 그녀가 이 사실과는 분리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반전 같은 걸로 의도한 게 아닙니다. 영화사의 현시점에서 이제 그런 건 안 먹힌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만들면, 모든 모호하던 것들도 실체를 가지게 되죠."
버클리(루시 역)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불확실성들을 붙잡으려 고군분투하는 여자 캐릭터를 풍부하고 쉽사리 잊히지 않는 연기로 해냈다. "저한테는, (여)배우에게 실제로 존재하는 역할을 주지 않는 건 오용이라고 여겨졌어요. 책에서 이런 장치를 사용한 덕분에, 존재할 필요는 없지만, 제게 캐릭터는 필요하게 된 거죠."
Needless to say, Buckley turns in a rich, haunting performance as a woman grappling with the uncertainty surrounding her. “To my mind, it would have been a misuse of any actress not to give them something to play that was real,” Kaufman said. “Because of the device that the book uses, it wasn’t required, and I needed it to be there.”
그러니까 루시가 진짜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 하지만 제이크가 그의 망상의 비현실성을 인정하는 순간 그녀 또한 분명히 주인공으로서의 힘을 갖고 있다. 어떤 순간, 그는 루시에게 안나 카반의 1967년 소설 "Ice"를 읽어봤냐고 물어본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황무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책에서 대부분을 이름 모를 여자를 향한 복잡한 이끌림의 본성과 분투하며 여자를 찾아다닌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에서 캐릭터들은 환상이 다시 덤벼들 때마다 그와 비슷한 분투를 겪는다. 이는 시네마라는 예술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도박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라는 "세계" - 감독, 또는 그의 주인공이 모든 걸 컨트롤하는 세계 - 에는 루시가 존재한다. "저는 그녀가 극적인 한 부분으로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주체성(agency)을 가졌으면 했어요. 그의 상상속에서마저 그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다는 아이디어가 정말 좋았어요. 물론 그는 원하는 걸 상상하겠지만, 그게 제 뜻대로 안 될 거란 것 또한 상상하겠죠. 여자친구가 얼마나 자길 따분해 할지, 자길 똑똑하지 않거나 재미 없다고 여길지 상상하는 거예요."
결국, 제이크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신 자기 자신에 집중한다. "그녀에게 어느 정도의 주체성을 준다는 개념을 고수하는 일환에서, 저는 그녀가 그의 결말에는 책임이 없기를 바랐어요."
중간에 보면, 관리인이 유치한 로맨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씬이 있다. 로버트 저메키스가 그 유치한 영화를 감독했다고 나온다. 황당한 엔딩크레딧이라 재밌었다. 왜 하필 저메키스인가?
관리인은 고등학교에서 수동적인 인물로, 한 발 떨어져서 사람들의 표정과 상황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한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빈 교실에 홀로 앉아 점심을 먹으며 텔레비젼으로 영화를 보는 모습을 발견한다. 식사시간 중에 보는 유치한 로맨스 영화의 결말 부분으로, 크레딧은 이름 하나 올라오기에 충분한 길이다.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왜 카우프만 감독은 <폴라익스프레스>의 감독에게 레퍼런스를 넘겨주기로 한 걸까? 카우프만은 인터뷰어에게 어쩌다 보니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보조감독이 인터넷에서 영화감독 이름 리스트를 쭉 보고 나서 제안했다고 한다. 저메킷스는 애초에 카우프만의 각본엔 있지도 않은 이름이었다.
"어쩔 땐 뭔가가 웃긴 이유는 그냥 웃기기 때문 밖에 없는 거죠. 저메키스 감독이 어쩌면 진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 수도 있구요. 아닐 것 같지만요. 저메키스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 리도, 만들 일도 없다고 생각하긴 해요. 오히려 낸시 마이어스 스타일이죠. 그가 할만한 건 아니예요. 그는 좀 더 하이컨셉트적인 걸 만들잖아요. 그래도 안 될 건 없죠, 그래서 이 유머가 통하는 거 아닐까요." 그는 저메키스 감독에게 이름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엔딩 크래딧 땡스투에 저메키스가 있다.
그냥 무작위로 고른 거란 말인가?
어찌됐든 저메키스는 지난 30년간 가장 유명한 상업영화 감독 중 하나고, 카우프만은 확실히 비상업적이다. 카우프만은 2012년 소설 <Chaos Walking>을 각색하며 저메키스와 일할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프로젝트는 그 이후로 많은 작가들의 손을 거쳤지만, 카우프만은 다음해 Doug Liman이 감독해 Lionsgate에서 공개된 버젼에 크레딧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그 작업을 같이 하려던 건 저메키스였다.
"로버트 저메키스와 있었던 일은 그냥 제가 <Chaos Walking>의 초안을 썼던 걸 그가 읽고는 흥미를 가진 것 같다는 거죠." 라이언스게이트가 그 자리를 주선했다. "즐거운 만남이었어요. 그 날 처음 본 거였는데 정말 즐거운 대화를 나눴고 어려운 부분을 해결할 아이디어도 얻었죠. 그런데 그와의 작업이 거기서 더 진행되진 않았어요."
다시 어색한 저녁식사 자리로 돌아가자. 왜 부모들의 모습이 계속 바뀌는가?
괴상한 저녁이 이어지는 내내, 제이크의 부모님은 극적인 외적 변화를 겪는다. 젊었다가 늙었다가 한다. 제이크는 기본적으로 그의 부모님의 다양한 삶의 단계를 함께 살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새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는 여자친구를 도대체 어느 타임라인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그는 (여자친구를 데려오기에)완벽한 순간을 찾아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완벽한 순간따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여자친구와 집에 머물고 싶어하는 만큼, 그들은 결국 여자친구의 주장대로 집을 떠나야 했다.
그래서 다시 긴 운전이 이어진다. 그러다 폴린 카엘의 흉내를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이크의 집에서, 루시는 그의 어릴적 방을 구경한다. 온갖 영화, 책, 가종 잡동사니가 흩뿌려진 방이다. 그 물건들 중 이런 게 있다 <소장용: 영화사 30년> 1996년 전 뉴욕커지 영화 비평가 폴린 카엘의 비평 모음집이다. 다시 길로 가보자. 루시와 제이크는 길고 긴 지적 토론을 나눈다. 온갖 용어가 인용된다. Guy Debord의 <Society as Spectacle>부터 괴테의 색채이론이나 데이비드 포스터 왈라스의 <재밌긴 하지만 두번 다시는 안 할 일> 에세이까지.
이런 단편적 부분들은 제이크의 강박을 보여주지만, 이 중 가장 긴 분량을 할애받은 것은 폴린 카엘의 비평이다.
영화와 제나 롤랜드의 연기에 관해 토론하며, 루시는 기본적으로 완전 카엘 그 자체로 변신하여 비평문의 강렬한 부분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반복해 말한다. "전 언제나 그녀(카엘)를 좋아해왔고, 그녀와 함께 자랐고 그녀의 글을 읽으며 자랐다. 그녀가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카우프만이 그녀의 오랜 팬들을 대변하여 말했다. 제이크 또한 그 중 하나일테다. 제이크가 좋아하는 그 영화에 대해 루시가 기나긴 독백을 끝마쳤을 때, 제이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게 '원하는 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제이크' 라는 아이디어를 보여줘요. 그가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마저 결국 실패하는 거죠. 이건 제 자전적 경험이에요. 당신이 뭔가를 좋아하는데, 당신이 정말 동경하는 누군가가 그걸 비판한 걸 보면, 당신은 이제 그 뭔가를 좋아한다는 게 바보처럼 느껴지는 거죠."

털시 타운 아이스크림은 뭔가?
결국, 드라이브는 잠시 털시 타운 아이스크림에 들리느라 멈춘다. 털시 타운 아이스크림은 휘몰아치는 눈보라에도 불구하고 정상영업을 하고 있는 기이한 촌동네 아이스크림 체인점이다. 털시타운으로 향하는 길에, 루시와 제이크는 털시타운 광고의 CM송을 떠올려낸다. 가게에 멈춰선 그들. 루시는 계산대 뒤의 세 여성과 기묘한 대화를 나눈다. 그 중 두명은 자꾸 낄낄대는 등 경박스럽고, 한명은 겁에 질린 듯 보인다.
카우프만에 따르면, 그들은 제이크가 전에 봤던 여자들을 본따 만들어진 것이다. "(그가 관리인으로 일 한) 고등학교 출신 애들중에 거기서 알바를 한 애들도 있을 거고, 그러다보니 자꾸 마주치면서 제이크의 심리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도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의 과거, 그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환상적 이정표(stop인데... 여튼)인거죠."
원작에서는 실제로 Dairy Queen에 들른다. "상표를 쓸 권리를 못 받아서 바꾼 거예요. 근데 바꾸길 잘 한 것 같아요. 좀 더 신비롭고, 좀 더 지역적이잖아요."
댄스시퀀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고등학교에 차를 세우고 나서, 제이크는 관리인이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에 화나서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루시가 제이크를 뒤쫓아 가는 동안, 그녀는 관리인과 따뜻한 만남을 가지는데, 그가 그녀를 그의 길로 보내준다는 것은 이 캐릭터가 마침내 자신의 환상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어, 루시와 제이크는 복도에서 서로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은 같은 옷을 입은 발레 무용수들이 그들을 대체한다. 다음 몇 분 동안, 그들은 뮤지컬 "오클라호마!"에서 본뜬듯한 생기 넘치는 안무를 선보인다.
영화 앞부분에서 관리인은 교내 연극 리사이틀 현장을 지나친다. 연극 리사이틀에는 "꿈의 발레" 장면이 들어있는데, 시골 소녀 로리가 두 구혼자 컬리 맥레인과 주드 프라이 가운데서 소동에 휩쓸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컬리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는 사실 제이크의 대역이나 다름 없다. 제이크가 제 사랑은 불가능함을 받아들인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인 것이다.
"'오클라호마!'에 몇몇 부분은 저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랑 거의 주제 면에서 평행한다고 할까요. (드림 시퀀스가) 저는 항상 흥미로웠거든요, 왜냐면 너무 이상하고, 또 도플갱어로 해석될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게 좋았어요." 다시 말하자면 제이크는 계속 다른 사람인 척 하면서도 그 망상을 없애기 위해 '오클라호마!'의 서사 구조를 이용한 것이다.
이야기하는 돼지 애니메이션도 있다.
사실, 이게 그나마 또 다른 직설적인 캐릭터다. 그의 차 안에서, 관리인은 죽음의 공격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찰스 포스터 케인(영화 시민케인 등장인물)이 "로즈버드" 라고 그의 침대에서 중얼거리듯이, 관리인-제이크는 그의 자동차 앞유리에서 그의 어린시절의 한 조각을 보는 것이다. 앞서 나왔던 털시 타운 아이스크림의 광고가 그 예다. 이는 배에 구더기가 난 돼지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진다. 앞서 제이크가 루시에게 자기네 농장을 구경시켜주며 자세히 얘기했던 돼지이기도 하다. 이 상냥한 동물은 제이크에게 다시 돌아와 그의 마지막, 자기성찰 순간까지 함께한다.
이 돼지의 무고함과 (그와 대비되는)끔찍한 아랫배는 제이크에게 어릴적 트라우마가 되었다. 나이를 먹으며, 그는 자기 세계의 이 근본적인 불균형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사람들이 노인이다. 하지만 뭔가... 가짜같다.
무대에 올라 상을 받는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크는 '오클라호마!'의 무대장치 앞에서, 무대분장이 분명한 노인 차림새를 하고 서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다. 그 공간의 모든 사람들이-심지어 부모와 루시를 포함해서-똑같은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원래는 이를 설명해줄만한 장면이 있었다.
"관리인이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메이크업에 관련된 책을 발견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누군가는 화장실에서 화장을 할 거니까요" 이 장치는 제이크가 제 머릿속의 모든 사람들을 제 (실제)나이와 비슷하게 맞출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연극적 꾸밈에 불과하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객석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영화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을 제외하고, 전부 (관리인으로 일하는 학교의)고등학생들을 연기한 엑스트라들입니다. 다 노인 분장을 한 젊은이들인거죠."
혹시 마지막은 <뷰티풀 마인드>의 클로징 스피치인가?
맞다. 제이크가 수상할 때, 그는 감동적인 노벨상 수상 스피치를 읊는다. 이는 사실 경제학자 존 내쉬의 노벨상 스피치로 론 하워드가 감독한 뷰티풀 마인드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사실, 그 장면이 전체적으로 뷰티풀 마인드를 본따 만들어졌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앞부분 제이크의 방에서 <뷰티풀 마인드> DVD가 슬쩍 나온다. 제이크 스스로가 천재적이지만 정신병으로 고생하고, 제 주변의 현실을 정리해내느라 고생하는 인물과 일체화 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카우프만이 아예 이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건 이야기 하기가 좀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 부분이 바로 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대로 이어지거든요. 이 영화는 자신이 본 것을 흡수하고 또 그것이 제 정신세계의 일부분으로 변화화는 과정을 경험하는 사람의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이게 일종의 '이 사람이 어떻게 환상을 만들어내는지' 를 보여주는 것이죠."
엔딩 크레딧을 보면 스피치 사용은 스튜디오의 승인을 받았다고 나왔지만, 카우프만은 그와 관련해 한 일이 없다. 저메키스때와 달리, 하워드 감독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살면서 론 하워드 감독이랑 얘기해본 적이 없어요. 회사에서 알아서 한 것 같아요."
<뷰티풀 마인드>가 지난 십여년간 오스카 수상작 중 가장 cheesier한 작품 중 하나임(그리고 <어뎁테이션>이 나온 해에 수상했다)을 생각해보면... 번역안함 알아서읽으삼 Considering that “A Beautiful Mind” was one of the cheesier Oscar winners of the previous decade (and it won the same year that “Adaptation” came out), it’s no huge leap to see the inclusion as a huge cinematic eyeroll about the misleading nature of storytelling that clouds the true nature of solipsistic struggles, something Kaufman has explored throughout his filmography. “A Beautiful Mind” puts a happy ending on that subject; in “I’m Thinking of Ending of Things,” the struggle never ends.
그리고 제이크의 노래는...
맞다, 또 '오클라호마!'다. 그의 어릴적 침실을 재현한 듯한 세트에 앉아 그는 "외로운 방"의 우울한 연주를 전달한다. 주드가 로리와 결혼하겠다고 주장하는 장면이다. 이 노래엔 "내 거라 부를 수 있는 여자를 주오." 라는 가사가 있다. "주드라는 캐릭터는 계속 제이크와 대비되는 것 같아요." 그의 인생을 정의하는 요소들로 지어진 세트에 앉은 제이크는 제 이야기의 스타인 동시에 제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끝나는군요! 맞죠?
그렇지도 않다. 관리인의 차가 눈에 파묻힌 마지막 장면은 본질적으로 관리인-제이크가 그 밤에 죽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남자가 제 육신을 탈출하며 실패로 가득한 제 인생을 마주하는 이야기의 아름답고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이다. 카우프만은 사람들이 크레딧까지 봐주길 원한다. 영화에 나온 레퍼런스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엔딩크래딧에 뭐가 많은데, 저한텐 되게 중요한 것들이에요. 일부러 이렇게 넣었어요."
지쳤는가? 좋다, 하지만 영화의 수수께끼는 모두 이유가 있다. 궁극적으로, 카우프만은 <이제 그만 끝낼까 해>가 관객들한테 일부러 뭔가를 숨겨놓은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보여주는 방식이면 여러분들도 충분히 알아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냥 캐릭터가 겪는 일을 그대로 보여드리는 겁니다. 이해를 하든 말든 상관 없이요."
n줄요약
1. 루시, 심지어 제이크마저 관리인의 상상속 인물임(제이크는 자기 자신이긴 한데 결국 도플갱어나 다름 없는 셈. 그 찌질해보이고 재미없는 제이크도 결국 이상화된 자아임)
2. 한 사람을 둘러싼 미디어들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영화임
3. 환상의 실존 등 시네마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임.
4. “상상에서 조차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는” 게 포인트
5. 그냥 본 대로 느끼면 됨
힘들어서 뒤로 갈수록 과과고 섞어서 대충 번역함... 원문으로 읽으셨으면 좋겠고 걍 대략적인 것만 파악하시길
영화에 대한 나만의 감상은 나중에 따로 써보도록 하겠음 이리저리 장치가 많아서 할 얘기가 많은 영화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