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양성소(속성운전학원)후기
일기2021년의 목표.
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던 것. 면허따기.
를 연말연시맞이로 고향에 잠깐 내려와 있는 현재 타의 90%로 갑작스럽게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학원 위치는 어느 촌동네.
이곳은 위험하다.
본격적으로 양성을 받기 전부터
양성을 받은 후인 지금까지도
이건... 이래서 도로위의 흉기가 생기는구나
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3일 코스로 운영된다.
3일만에 면허를 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첫날에 기능시험, 둘쨋날에 필기시험, 셋째날에 도로주행을 본다.
보통 노멀한 운전학원은 각 시험 사이에 몇주의 텀이 있지만 이곳에선 3일면 충분하다.
그리하기 위해 하루 24시간 중 12시간 정도를 이곳에서 운전면허합격 이라는 목표 하나만으로 갈아넣게 된다.
아침 일찍 내가 사는 동네에 학원 셔틀버스가 오면 그걸 타고 학원에 실려가면 되는데
버스는 수능 끝난 고3들이 거의 80%이상 채우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그 안에서 만학도나 다름 없지만 그런 걸 티내게 될 일은 없다. 이곳의 일정은 매우 빡빡하여서 남과 이야기 나눌 시간 따위 없다. 일정은 분단위로 흘러가고 수십명이 그 일정을 따라 굴려지는데도 탈선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정도면 킬러양성소가 아니라 흉기공장인듯하다.
3일만에 끝난다고 해서 뭔 범법을 저지르는 건 아니고 법으로 정해진 연습시간은 다 채운다. 나름 경찰청이 인즈엉한 학원이다.
그치만 코로나시국이라고 점심밥은 안 주는데
어차피 수십명이 좁아터질것같고 낡아빠진 대기실에서 하루죙일 모여있다. 나는 코로나에 걸릴까봐 덜덜 떨진 않았지만 걸려도 이상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모두 피곤과 긴장과 추위로 안색이 좋지 못하다.
밥도 안 줘서 거의 굶는다 생각하면 된다.
이리저리 불리면 불리는대로 불려간다.
척척척. 탁탁탁. 찢기고 삐걱거리고 바닥은 페인트가 까져있으며 어디 폐업하는 국도 기사식당에서 내놓은 의자를 보일 때마다 챙겨와 갖다 쉬라고 아무데나 깔아놓은 인테리어.
난민체험같다.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
여기와 같은 생활을 더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내가 계산을 해봤는데
하루 약 20명의 신입생이 온다고 할 때(이것도 눈대중보다 적게 잡은 거) 55만*20명=천백만원
하루에 천만원을 거뜬히 버는 난민체험캠프
킹발라야...
포인트는, 어쨌든 이리 하여 면허를 따긴 땄다는 것이다...
다음주면 면허증이 우편으로 올 거라고 한다.
시험을 하나하나 통과해놓고도
‘내가... 통과했다고? 이럼 안 되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시험 자체는 컴퓨터가 감독했으므로...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는데... 여튼........
속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나는 정말 예정에 없이 시작한 거였기 때문에 증명사진도 없었어서 그 불안과 추위와 피곤에 찌든 얼굴로 즉석기계에서 찍은 사진을 썼다.
개못생긴 사진이 내 첫 면허사진이 되었다.
2n살이나 되어 3일만에 딴 면허라 자랑하고 싶지만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녀석인 것이다.
사고는 오늘 발생했다.
말 그대로 사고다.
어쨌든 면허를 따긴 땄고
내가 사는 집에 올라가면 차가 없으니 운전할 기회도 없으므로 고향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 차로 좀 연습이라도 해보고자
오늘 부모님을 대동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차 잘 안 다니지만 제법 난이도가 높은... 빙글빙글 도는 산중의 경사길...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그런 코스. 하드코어. 여길 잘 돌 수 있으면 웬만한 “길”은 다 탈 수 있다 싶은 그런 길. (다른 차 눈치보고 껴들고 이런 건 다른 이야기)
미친짓이었다!
정말 악조건이긴 했던 것이
어쨌든 전전날에 병아리눈물만큼이나마 눈이 와 놓은 게 있었고 그 때 운전이라는 것에 버닝하던 나는 눈오는 날 경사길에서 속절없이 미끄러지는 자동차들 영상을 많이 봐놔서 벌벌 떨었다.
게다가 학원에서 기능연습하거나 도로주행할 때 탔던
브레이크든 악셀이든 밟아줘야 나가고 걱삐걱삐 퉁탕퉁탕 거리던 24만km를 달린 폐차예토전생 제발죽여달라고 외치는 연습용차량들과 달리
엄빠차는 너무 부드러워서 미끄러울 정도였다ㅠㅠ.
게다가 나는 오만하고 싸가지 없고 똥고집이라
(도로주행할때도 선생님한테 왤케 똥고집이냐고 혼난부분)
아빠가 옆에서 어째라 저째라 하면
온몸은 긴장해서 뻣뻣하면서도
주둥이만 존나게 유연하게 살아서 나불나불 조잘조잘 반박 변명 싫은뎅ㅋ 이지랄을 떤 것이다.
그결과
처음엔 코너+경사+눈깔려있을지도모름 이라는 고난이도 코스에 30km도 겨우 밟으며 가던 나는
그 코스를 세번 쯤 돌자 약간 속도를 내게 되었는데
아 하여튼
씨발...
씨발 ㅠㅠ.
우회전 해야하는 곳이 있었는데
코스 두번돌때까진 거기에 차가 한대도 없었는데
세번째때 차들이 줄줄이 있어서 당황해서
피한다고 씨발... 핸들을존나... 너무돌려서...
브레이크못밟고... 옆에박아버렷다
그 전까진 그래도.......... 잘 하고 있었는데....
씨발....
아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박고 난 후에 밟았다. :)
신나게 박았다 ㄹㅇ 콰당탕콰직꽝야했다
벌벌 덜덜
일가족 패닉 후 운전대는 아빠에게 넘어갔다
분위기존나참담하죠? 당장집에가.
근데 차가... 이상한 싀익. 싀익. 소리를 내고 핸들도 잘 안 듣는 거다
아무래도 보험 경인차 불러야겟다고 갓길에 멈춰선 우리차
흑흑
눈물이 존나 났다 ㅠㅠ
부모님한테 너무 미안하고
이럴려고 개깝쳤나 내가 너무 한심하고 왜 이렇게 반사신경이랑 판단력이 없을까 거기서 왜그랬을까 왜 나는 브레이크에 발이 안 갈까 스스로에게 너무 화났다
나는 진짜... 운전하면 인터넷에 영상 박제될 거 같다
왜 모든 사람들이 이해 못할 선택을 하는 무개념 운전자들 있지 않은가... 그게 미래의 내모습일 거 같다
솔직히 난 그런 편이긴 하다 정말 운동신경도 없고
게임을 해도 피지컬로 조져야 하는 게임은 진짜 못한다
내가 뭘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걍 혼란스러운 상태로 공격 버튼만 존나 갈기는데 걍 5초만에 죽어버리는 그런
즉 상황판단 빨리 하고 최선의 선택을 얼른 내려야 하는 운전이라는 장르와는 진짜 안 맞는 타입일거다 아마
(이건... 사실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어쩌면 난 평생 면허 안 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또 사람이 살다보니까 차가 있으면, 운전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일이 점점 많아져서 결국 도전을 하였고)
근데 엄마가 다친사람 없으니 괜찮다고
원래 처음 하면 사고 나는 거라고... 이런 일 있었다고 해서 겁먹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해보라고 ㅜㅜ 그래서
힝 더 눈물났다 내가 멀쩡한 차와 멀쩡한 길 멀쩡한 상황에서 ㅈㄴ 어이없이 애꿎은 차를 폐병걸리고 달팽이관 고장난 스크래치 뱅신으로 만들어놨는데 엄마는 나를 격려해줬다... 수리비도 어쨌든 깨질 거고 주말동안 차 없어서 어디 나가지도 못하게 생겼는데... ㅠㅠ
그 전까지만 해도 홈플러스에서 신나게 마라탕 재료 사서 들떠있었던 데다가... 깝친다고 부모님한테 차 사달라고 하고 ㅅㅂ 그랬는데
기가 레알 있는대로 다 죽었다
그래서 몰래 눈물을 좀 더 훔치고
여튼 계속 실의에 빠져 있을 순 없으므로
집에서 마라탕을 해먹었다
집에서 해먹는 건 처음이었는데 나름 재밌고 맛있었다
홈플러스에 푸주 파는 곳 어디임
ㅋㅋ
그리하여 결론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운전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살다보면 운전이 너무 유용하고 필요한 순간들이 있을테니까
그치만... 어쨌든 다시 연습을 해야 탈 수 있을텐데
각이 좁은 코너링 도는 게 무섭다 ㅠㅠ
ㅅㅂ진짜 이런 수준의 인간에게 면허증이 발급되다니
나 면허 사실 평생 못 따도 되니까 기준 좀 더 빡세졌으면 좋겠다
사실상 기본적인 부분부분과 기능의 명칭 본넷 안엔 뭐가 있는지 차에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어디를 의심해야 하는지 점검은 얼마주기로 받아야 하는지 뭐 이런 초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상태 𐌅 𐨛 𐌅𐨛 𐌅 ࠅ ㅅㅂ
근데 이게 내가 물론... 준비가 안 된 것도 있는데
여튼 이런 준비 안 된 인간한테 면허발급이 된다니까??
어쨌든 어짜피 차 수리 맡기는 바람에 여기서 지내는 동안 더 핸들 잡아볼 일은 없을 거 같으니
결국 나도 장롱면허행
다친 사람 없으니 그냥 액땜했다 셈 칠 거다
2021년 되자마자 거하게 한 거다
아빠는 새해맞이 등산 갔다가 1월1일부터 자빠져서 이마 찢고 꿰매는 액땜을 하였는데
부전자전 해서 나는 차를 찢게 되었구나
ㅠㅠ
운전... 에휴
에휴씨발
얘들아 운전면허 속성학원 가지마라
차 찢고 지갑도 찢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