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주의일까
일기2021년... 이제 겨우 2주 좀 지났을 뿐인데 에피소드와 업다운이 이미 많다. 블로그에도 썼지만 면허를 딴 반면에 교통사고도 났고 회사에서 새 맥북을 장만해줘서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아빠의 무시를 알게 됐고 LG전자 개이득 처분했으나 뭔 알퍼1스 병림픽에 엮이고... 앞으로 남은 348일이 얼마나 파란만장할지 벌써 걱정된다. 토정비결이라도 봐야함?
싶어서 토정비결(포스텔러) 보고 왔는데 좋은 얘기밖에 없다 이러면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다년간의 우울증과 그 탈출 경험으로 멘탈이 많이 튼튼해졌다. 이젠 정신병의 급습이 끼치려 하면 얼른 약 놓을 수 있다. 바로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거에 집중하기. 뭐든 상관 없다 유튜브를 봐도 되고 게임을 해도 된다. 우울에 집중하라는 뇌의 끊임없는 유혹이 있으나 이겨낸다. 이겨낼 수 있다. 사고의 재앙화까지 가지 않는다. 갑자기 내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찾아보거나 인생의 모든 좆같았던 일들이 거대한 인과관계를 가진 양 운명처럼 해석하지 않을 수 있다. 우울한 것은 모먼트고 남은 인생동안 가능성은 너무나도 많다. 이 때 패배해서 기력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내가 불운하고 모자라다는 것은 착각이다. 애초에 그런 개념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면서도 행함에도.
선을 넘어선 긍정을 가지기는 힘들다. 아니? 난 잘 될 건데? 난 존나게 성공할 건데? 이런 낙관적 마인드는 맞아 난 안 될 거야 평생 비참할 거야 같은 비관적 마인드만큼 비현실적이다.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합리화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출발선이 다르니 이런 격차는 어차피 넘을 수 없다"
기생충에서 무계획이 최고의 계회이라 한 것처럼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이 최고의 희망이 되는 거다. 패배주의. 나의 개인적 현상이라기 보단 사실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재밌는 건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는 말은 그럭저럭, 그럴 수도 있지 싶은데 "패배해도 감흥하지 않는다" 는 말은 어딘가 욱하고 올라온다는 거다. 둘 다 슬퍼하지 않음에 초점을 둔 건데 희망을 가지지 않는 건 좀 더 외적인 범주의 일인 반면 패배해도 감흥하지 않는 건 내적인 일이라 그렇다. 내가 바라고 내가 포기하는 것들은 허황됐거나 아쉽지 않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한다면 얻을 수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픈 것들은 그 자체로 아주 가치있고 아름다워서 갖고싶어지는 게 아니라 꿈으로서 내게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치있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이상 마음이 아프고 싶지 않기 때문에 패배에 반응하여 끓어오르거나 절망하거나 하기 보다는 얼른 그냥 딴데로 눈 돌리고 있다. 나는 옛날에 아주 예민했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으나 풍성하게 만들기도 했다.
패배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 무뎌진다는 걸 넘어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절단시키는 일이다. 나에게 '나' 라는 개념이 적어지는 것이다. 사실 '나' 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존나 우울할 수밖에 없다. 이건 실험적 근거도 있다. 글을 쓸 때 '나' 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이 우울척도가 높았다. '나' 를 내가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나? 그냥 눈 앞의 즐거움에나 집중하면 안 되나? 그냥 하루에 백번씩 엽떡먹고싶다는 생각이나 처하는 매커니즘으로 굴러갈 순 없는 거냐고? -- 이건 선천적인 거랄까 기질적인 거다. 심심하거나 지칠 때 배고픔을 해결하면 다 해결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음식 생각은 1도 안 드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처럼 그냥 내 눈엔 보인단 말이다. 내가 적어지는 것이. 가지고 있던 걸 뺏기는데, 아니 내 손아귀 힘이 차마 충분하지 못해서 설설설 빠져나가고 있는데.
이쯤 되면 이상하다. 내가 내 인생을 보고 슬퍼지는 이유가 뭘까? 우울증 탈출을 했지만 이건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못 다 이룬 나의 꿈에 대한 미련? 무당이 나보고 한 있다 그랬는데. 그렇지만 이젠 그 꿈에 대단치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을 때도 행복이나 즐거움보다 불안이 컸다. 그냥 쥐고 있는 게 훨씬 아파서 다 놔줬단 말이다. 그깟 꿈 이루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 너무너무 잘 알고 꼭 그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로도 실현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단 말이다. 합리화 한 거지만 그게 나쁘지 않다고 정말 단언할 수 있다 정말로.
난 완벽주의가 우울증에 더 박차를 가해준 편이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음을, "사람이 사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는 걸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에 힘을 줬는데, 그래서 괜찮아진 반면, 이게 하여간 부작용도 좀 있는 것 같다... 야심이 없어진다... 야심이 없어지는 건 어쩌면 맹장수술 실밥자국 처럼 우울증의 꼬멘 자국 같은 거다. 평생 갈 후유증인 거다. 다시는 가질 수 없는 물질일지도 모르는 거다.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면 괜찮지만 (걍 떡볶이나 먹으면 된다. 떡볶이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의식이 되면. 너저분하게... 내 손길이 닿지 않은지 오래돼 방치되고 빛바랜 나의 소품들을 한 번 바라보게 되면 그때는 아무것 안 하고 숨만 쉬어도 그 오르내리는 갈비조차 아픈 거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결국 합리화를 할 수 있게 된 나 가 슬픈 거다. 꿈을 잃었어? 포기했어? 이게 슬픈 게 아니다. 한이 남아? 이것도 아니다. 합리화를 하기까지 거쳤던 과정들과 내가 잘라냈던 것들 갈아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이나 실제로 나에게 있었던 좆같은 일들 보다는 그로 인해 지금의 경지에 이르른 나 가 슬픈 거다. 버려진 나의 방을 보고도 소품들 하나하나에 깃든 반짝이거나 뜨겁거나 날카로운 무언가를 알고도 다시 손대어 닦아줄 마음이 안 들게 된 나 가 슬픈 거다.
자세히 안 보면? 그냥 뭐 살아가는 사람 1이다. 재밌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고 놀고 웃고 울고 밥먹고 자고.
자세히 보면 안 된다. 맞다. 알지 않나. 딴 거 하고 딴 거 봐라. 정신을 빼앗겨라. 쓰잘데 없는 데에 집중해라. 마음을 보지 말고 유튜브나 봐라.
또 뇌 한 모퉁이를 잘라내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