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Room

패키지 여행은 아보카도 김치다.

일기

지난 연말연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둘째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패키지 투어는 나에게 며칠 내내 신선한 충격, 새로운 배움, 껄쩍찌근한 즐거움과 괴로움을 주었다. 이 기묘한 컨텐츠에 대한 감상을 글로 적어보기로 한다. 패키지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사와 여행지, 기념품 가게, 현지인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리고 그 안에서 여행객들은 무엇을 느끼게 되어있는가?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한과 얼이 담겨있다. 두번 다신 안 해봐도 될 경험, 그러나 한번쯤은 해봐도 될 경험, 바로 <패키지 여행>.

연말연시. 나의 생일도 껴있고, 새해도 있고, 동생의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익히 인터넷을 통해 '부모님을 데리고 떠나는 자유여행'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들었기 때문에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패키지 상품을 찾았다. 그리고, 찾아본 패키지 여행의 커리큘럼(?)들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자유여행으로 가는 것보다 비용은 훨씬 적게 들었고, 스케줄은 알차보였다. 동생이 입사일을 잘못 알아 여행에서 빠지게 되었지만, 또 우리가족의 분위기도 말하지못할 사정으로 흉흉해 졌지만, 얼마만의 해외여행을 그런 이유로 죄다 취소할 순 없었다. 결국 우리-엄마, 아빠, 나-는 다낭으로 3박4일간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나의 여행 스타일에 대해 말하자면 완전히 개인여행, 자유여행 파다. 아니, 사실 이번에 패키지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진 내가 그런 여행취향을 가졌는지도 잘 몰랐다. 다녔던 대부분의 여행이 혼자였고(친구들은 현지에서 만나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면 보내고 따로 할 일이 있으면 헤어지고 그랬다) 거의 무계획적으로 다녔다. 다른 스타일의 여행을 다녀본 적이 별로 없으니 내가 무엇을 선호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아, 지금까지 나는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해왔구나.

사실 다낭이라는 여행지도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는데 부모님이 베트남이 낫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맘같아선 부모님 나이도 있고 하니 어디 아주 휴양만 테마로 한, 바다가 있고 리조트가 좋은, 며칠 내내 물놀이나 하고 일광욕이나 하는 그런 여행을 갔으면 했는데 엄마가 물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 부모님 주변 사람들이 다 베트남은 한번씩 갔다와 본 터라, 어쩌다보니 다낭에 가게 되었다. 그러니 시작도 전에 나는 여행의 설렘이랄 게 없었던 거다.

패키지여행이라고 해서 자식인 당신 또한 맘 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0부터 100까지 전부 당신이 계획을 짜야하고 부모를 이끌어야 하는 자유여행과는 난이도가 천지차이겠지만 패키지 여행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아방하게 있을 수도 절대 없다. 이건 부모님의 성향도 많이 타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님은, 아마도, 스마트폰 조작법을 자기가 익히기 보다는 대충 자식들에게 뭐 좀 해봐라 하고 툭 던져주는 것 답게, 네가 해둬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걸 굳이 말로 시키지 않아도, 자식인 당신은 아주 당연하게 '책임자는 나'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애초에 여행상품 구매부터, 여권을 어디에 뒀는지, 공항에 몇시까지 도착하려면 몇시에 어떤 리무진을 타야 하는지, 수하물로 넣으면 안 되는 물건이 뭐뭐가 있으니까 짐 싸는 법도 대충 알려줘야 하고, 공항 안에서 출입국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는지, 몇번 게이트인지, 데이터 로밍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내식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호텔 카드키는 어디에 뒀는지, 호텔 데스크에 문의하기, 시간이 남을 때 뭘 해야 할지, 그럴 때 교통수단이라도 이용해야 한다면 그것도 다 님이 찾아야 하고, 방금 가이드가 뭐라고 말했는지, 이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가이드가 반장이라면 당신은 당신 가족의 조장이 된다. 절대 패키지 여행을 간다고 해서 100% 마음이 편한 게 아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아마 당신은 저절로 알아서 조장 노릇, 시다바리 노릇, 혹은 혼자 마음 급해져서 쌩뚱맞게 짜증내는 역할을 맡아서 하게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비교적 젊고 세상물정에 밝은 자의 당연한 의무다. 당연히 컴퓨터도 휴대폰도 부모님보다 내가 잘 쓰고, 영어도 내가 더 잘 하니까. 이것이 그렇게 큰 불편함은 아니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백퍼센트 즐기기' 는 힘들다는 거다. 애초에 해외여행이라는 게, 내 한몸 똑바로 간수하기도 빡센 일이므로. 어쨌거나 이건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부모님을 위한 여행이었으니 이런 점은 별로 불만이 되지 않았다. 사실 이정도면 그리 많은 의무가 부과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복잡한 일은 여행사가(가이드가) 다 해주니까. 숙소는 물론이고 모든 교통편, 식사, 티켓, 필요할 때 환전까지. 여행의 핵심이 되는 일은 그들이 다 해주는 게 맞다. 그리고 가이드가 해줘야 하는 일 중에는 또 하나, '설명해주기' 가 있다.

그것이 내 첫번째 패키지여행의 충격이었다.

첫날 입국했을 땐 이미 밤이었어서, 우리 팀은 곧장 호텔로 가야 했다. 그렇게 호텔로 향하는 관광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자신이 누군지, 우리 패키지 여행의 인원들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호텔은 다들 어디어디를 쓰는지, 지금 베트남의 날씨가 어떤지, 내일 일정을 위해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환전이나 물가는 어떻게 되는지, 현지인들에게 팁은 어떻게 줘야 하는지, 내일 몇시까지 나와야 하는지, 우리가 가는 호텔이 어떤 호텔인지, 편의시설이 무엇이 있는지, 를 말해주었다. 다음날 첫 일정을 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아침인사, 오늘 날씨가 어떠한지, 어제 밤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이 어디인지, 오늘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이곳의 문화, 자기가 가이드를 하면서 겪었던 일, 왼편을 보세요 저게 뭐냐면은, 오른편을 보세요 저게 뭐냐면은, 이 나라 차가 느리게 가지요 그게 왜냐면은,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첫번째 일정을 끝내고 다시 탄 버스에서, 지금 우리가 뭐를 먹으러 가냐면은, 식당에 가셔서 주의할 점, 왼쪽을 보세요 저게 뭐냐면은, 오른쪽을 보세요 저게 뭐냐면은, 가이드라는 직업의 애환, 현지인들의 사정, 밥을 먹고 나서 다시 탄 버스에서, 밥은 맛있게 드셨냐, 다낭의 한식과 현지식 차이, 우리가 다음으로 갈 곳은, 왼쪽을 보세요, 오른쪽을 보세요, 저희 가족은 다 한국에 사는데요, 여기 이 친구는 한국말은 못해도 영어는 다 해가지구요, 팁좀 팍팍 주시구요, ...

귀가 쉬는 시간이 없다.

관광버스 마이크 스피커로 때려박는 찰진 입담이 쉴새 업이 계속된다. 어떤 이야기는 재밌고 어떤 이야기는 유익하고 어떤 이야기는 반복적이고 어떤 이야기는 속이 훤히 보이고, 어쨌거나, 도대체 하루종일 귀가 쉴 시간이 없었다. 일정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나의 귀는 단 한시도 안락하지 못했다. 버스에선 가이드가 떠들고, 관광스팟에선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그들이 떠들고, 부모님과도 계속 되는 대화...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와, 귀가 째재쟁깽깽하네.'

게다가 조금 애환이랄까, 며칠씩 같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데다가 특히 가이드는 우리가 계속 봐야 하고 들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안 볼 수 있는 것도 보게 되고 하기 마련인데,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관광객, 여행객으로서 놀러 온 것이지만 가이드에겐 이 모든 게 다 일일텐데. 즐거울까? 우리가 밥 먹을 때 저분도 밥 제대로 드시나? 우리가 구경을 하고 오는 동안 저분은 어디서 뭘 하시지? 그 중간중간, 마이크를 들고서도 아주 잠시 말을 하지 않을 때라거나, 잠깐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을 때라거나,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는, 그 아주 찰나의 순간들에 어쩔 수 없이 비져나오는 지치고 피곤한, 그리 재밌거나 즐겁지 않아 보이는 표정... 사람인 이상 말이다... 나는 그런 것을 보았는데, 그는 마이크만 들면 깔깔이가 되었다. 일이란.

하여간에 귀가 쉬는 시간이 내겐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심지어 일정중이 아닐 때도 부모님과 함께하니 조용할 틈이라곤 부모님이 잠든 후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조금 일찍 깬 아침, 혼자 호텔 복도로 나갔다가,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그제야 '아 내가 여행을 왔구나' 를 느끼게 되었다. 밤시간이 생겨 호텔 주변을 혼자 산책하던 중에야 '아 내가 외국에 왔구나' 를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절대적으로... 외국 여행을 가서는 더더욱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내가 내향적이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그 때에야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귀가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이드가 있었던 덕에 나는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또 궁금한 것들의 대답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분이 없었다면 다 그냥 궁금증에서 그쳤거나, 아예 모를 뻔한 지식과 이야기들이 많다. 예를 들어 다낭의 다운타운 쪽을 다니다보면 가정집들이 한국과 비교해 굉장히 다르게 생긴 것을 느끼게 된다. 다 가로폭이 좁으면서, 일정하고, 위로는 높은 2~4층 짜리 집인데, 왜 그런 모양일까? 라던지. 멀티플렉스에 가봤는데 상영중인 영화의 70%정도가 공포영화인 것 같은데, 그건 왜 그런가? 라던지. 이 나라의 경제수준, 노동환경이 어떤지, 무슨 산업이 발달했는지, 이 관광지의 역사가 어떠한지, ...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짜. 다만. 하여튼. 어쨌든 말이다.

그렇게 귀가 쉬는 시간이 없다면, 발이 쉬는 시간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동할 때, 식사할 때 빼곤 당신은 아마도 계속해서 어디론가 걸어다니거나 서있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관광하고 여행하는 데 발이 쉬는 시간이 없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도 공감한다. 그 전에도 나는 여행가면 진짜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일단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걷는걸 좋아한다, 특히 여행을 가서는 다리가 아플만큼 걷는다, 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땐 '내가 걷고싶은 만큼' 걸었고, 앉고싶을 땐 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패키지 여행은 어떠한가. 자, 여기서 구경 하시면 되고요, 3시 40분에 다시 여기로 모이겠습니다. 그러면 3시 40분까지 뽕을 뽑아야 하니 최대한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한다. 그럼 버스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가는데, 식사시간이 충분하긴 해도 그건 '식사' 시간이지 '휴식' 시간이 아니다. 쉬러 간 건데 '느긋한' 시간은 없는 것이다.

어떻게 가는 해외여행인데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유명하다는 것들은 최대한 다 보고 와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패키지 여행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상술했다시피 '내가 이곳에 있다' 는 느낌을 받고싶은 사람이다. 그 느낌은 문득, 감상중에 찾아오는 것이어서 시간이 필요하다. 거대한 불상, 체크. 자연 동굴, 체크. 아까 가이드가 말해준 것, 체크. 이런 식으로 봐야할 것을 보는 과제스러운 구경에서는 애초에 그 '거대한 불상' 이외의 것에서 감상이 찾아오기 힘들다. '와, 진짜 크다.' 는 찾아오지만 남주혁마냥 그 불상과 내 주변을 이루고 있는 조명 온도 습도를 캐치하기는 힘들다. 그런 감상을 느끼고 싶은 나에게 '50분 안에 다보기' 혹은 '이동하는 중간중간 자꾸 주의를 환기시키는 컨텐츠 제공당하기' 는 맞지 않았다(예를 들면 현지 과일이라던지 그런 걸 또 이동중에 나눠주면서 이야기를 해주고 맛보게 해주고 하는데... 좋으면서도... 아 쉴 틈 없다... 라는 기분)

다낭은 외국인이 많은 도시다. 그중에 제일 많은 건 한국인들을 비롯한 아시아인이지만 유럽인들도 정말 많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에 여행 온 백인들을 본 사람들이면 알겠지만 걔네들은 대부분 Chill한 여행 스타일을 고수한다. 걔네한테 아시아로 오는 건 비행기삭부터 해서 얼마나 거금이 드는 큰 결심이겠는가. 그러니 비교적 오랜 시간 체류하면서, 느긋하게 일상같은 여유를 느끼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뭐냐면 우리는 50분 안에 호이안 거리를 다 둘러봐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여기저기 장딴지 불타게 걸어다니고 있는데 백인들은 저마다 펍이니 카페니 테라스에 앉아서 존나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나도 노란 찻집 창문속의 인물화가 되어 시간을 무찌르고 싶었다고. 하지만? 그러고 싶으면 돈 더 써서 자유여행 가라.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한 점들은 응당 패키지여행이라고 하면 자연히 예상가능한 부분이다. 당신이 패키지 여행을, 그것도 그럭저럭 가성비 괜찮은 제품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가이드의 설명이 동반되며 감상에 빠질 여유 따위는 없다는 걸 애진작에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직접 그걸 경험해보는 건 머리로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내가 패키지 여행을 하며 충격을 받았던 건 이 부분들이 아니었다. 제일 충격을 받았던 포인트는 바로,

여기는 외국이 아니라는 것 이다.

물론 베트남, 그 안에서도 다낭이라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관광지라는 특수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루 세끼중 한끼는 꼭 바우처된 한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것, 또 어딜 가든 한국어로 된 안내문과 호객행위가 존재하는 것, 심지어 관광지에선 현지어나 외국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것 등등, 다낭의 별명이 '경기도 다낭시' 인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완전히 '현지' 에 동화되기란 사실 그곳에 대해서 잘 알고 자신감이 있는 게 아니면 어려울 일이다. 적어도 언어는 되어야 그 곳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여기는 왜 이런지, 무슨 문화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지. 베트남어를 하나도 모르는 입장에서 감히 그런 걸 꿈꾸지 않았고, 한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장소와 서비스라면 그만큼 안정성이 확보가 되어 있으니 다 얻는 게 있다.

그렇지만 말이다. 마지막 날 야경을 보는 유람선에서 느낀 바는 나를 눈물짓게 했다.

유람선을 타고 투본강에서 다낭의 야경을 바라보는 마지막 코스가 있었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으나 '유람선', '도시 야경' 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나는 어느정도의 낭만과 분위기를 예상했더랬다. 그런데 시작부터 기묘했다. 선착장에 가는데 100명중에 100명이 한국인이었고 줄지어 선 배는 통영에서 욕지도 가는 배에다가 화려한 네온사인과 전구로 치장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래, 우리는 가성비 코스로 왓으니까 뭐 거대한 호화 유람선에서 와인에 크래커를 곁들이며 우아한 밤을 보내는 그런 사치스런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내려놓고 승선했다.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연식이 궁금한 배에 열댓명 넘는 관광객이 몸을 싣자, 구명조끼를 나눠준다.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일행들은 철제 의자에 앉아, 구명조끼를 껴입고, 서비스로 나온 수박과 생수를 먹었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음악이 희한했다. 불교 클럽믹스 같은 요상한 노래가 흘러나오더니 선두에 웬... 태국 불교식 금색 투피스 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금색 피라미드를 뒤집어 쓴 여성이 등장했다. 홀로 선 그녀는 칠이 벗겨진 선내, 구명조끼를 입은 관광객들 앞, 싸구려 네온사인이 둘러진 배의 선수에서, 갑자기 노래에 맞춰 전?통?무?용? 을 추기 시작했다. 그게 전통무용. 인지 전?통?무?용?인지 모르겠는 이유는 아무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기춤을 느리게 춘듯한 몸의 직각적 선과 어찌보면 보깅마냥 포징포인트를 준... 그 우아한 춤은...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시작되어 그냥 끝났다. 우리는 영문 모르고 박수를 쳤고 또 다른 영문 모르던 관광객들은 그녀의 퍼포먼스와 겉모습에 감동알 받았는지 셀카를 요청하며 팁을 주었다. 그래 야경만 예쁘면 됐지 라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이상한 촉이 와. 그리고 그 촉은 틀리지 않았다. 무용수가 하선하고, 배는 한껏 달?궈?진? 흥을 이어나가기 위해 계속해소 노래를 틀었는데...

홍진영의 따르릉이었다.

그 다음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고

그 다음엔 소찬휘의 티얼스였다.

배가 출발한다. 잔인한 여자라 나를 욕하지 말라며.

따르릉 따르릉 내가 네 오빠야 (투본 강의 야경) 오 오 오 오 오빤 강남스타일 (다낭의 도시미관) 잔인한 여자라 나를 욕하지는 마

그 배. 11평 남짓 될까 싶은 그 배. 그 배는 투본강을 운행하는 배가 아니었고, 이동식 한국령 영토였다. 분명했다. 거기는 다낭 안의 한국이었고, 다낭 안의 관광버스였다.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나는 우울감과 유쾌함을 동시에 느꼈고, 거기에는 죄책감이 따라붙었다. 이게 다 한국인들이 너무 많이 와서, 한국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국인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생긴 프로그램이 아니겠는가.

왜 다낭의 야경에 따르릉 따르릉 내가 네 오빠야 라는 노래가 BGM으로 깔리는 거지?

이것은 외래종의 침략이었다. 외래종이 오랫동안 유입되며 자리잡은 결과 다낭의 경제생태계가 바뀌었다. 관광업으로 먹고살게 된 도시 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미시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투본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한국의 뽕짝팝을 듣게 된다.

나는 계속해서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눈물지으며, 저 멀리 보이는 관람차 전광판의 붉은 별을 발견하고 기뻐했다. 와! 공산주의의 상징! 비로소 베트남같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해외여행을 나가서 이런 걸 보고 들을 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패키지라도 말이다.

외래종의 유입으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는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으로 어떠한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하여 살아갈 것이고, 새로운 시스템과 스타일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그곳의 고유한 생태계가 될 것이다. 나는 죄책감을 덜 가지기로 했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덕에 이 유람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미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내가 늘 알고 있던 일상과 현실에서 벗어나서 다른 세계, 다른 풍경이 있다는 걸 목도하고 싶어서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역시 한국인이 많은, 그래서 영향력을 잔뜩 끼쳐버린 여행지는, 내게 여행의 즐거움을 크게 주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크게 느꼈다. 패키지 여행이란, 아보카도 김치구나. 아보카도를 써서 만들었어도 김치맛이 나. 그리고 아보카도 김치는 김치맛이 나야 해. 그게 맞다. 패키지 여행은, 당신은 완전한 외국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당신은 '한국'에 둘러싸인 외국의 경험을 선택한 것이다. 한껏 신명나는 야경관광을 마치고 배에서 내리며 나는 생각했다. 3박 4일동안 나는 다낭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물리적으로는 다낭에 있었지만, 내가 경험한 것들은 한국의 보호, 한국의 제안, 한국인을 위한 콘텐츠에 다름 없었다.

생각해보면 실로 그러했다. 우리는 가성비 상품을 선택한 만큼 일정동안 '쇼핑' - 나처럼 패키지 뉴비들을 위해 설명한다. 현지 특산품을 판매하기 위해 여행사에서 현지 영업처와 결탁해 그곳에 가서 상품의 설명을 듣고 체험하고 구매하는 코너다. - 을 3회를 가졌는데, 이 영업처의 관리인들이 모두 한국인인 것은 그렇다 치고, 과일 특산품 판매점에서 열심히 과일 설명을 해주던 아저씨가 그날 저녁식사를 하러 간 한식당의 사장인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이런 표현은 거칠지만 그 쯤 되면 완전히 짜여진, 매우 한국적인 생태계 안에서 관광객들은 이리저리 휩쓸리는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된다. 패키지여행은 Domestic한 경험이다. 인적네트워크의 결정체고, 관광객은 그 안에서 안전과 편의를 보장받는데, 그 인적 네트워크가 그냥 한국 그자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싫다면 당신은 몸으로 정신으로 돈으로 고생하며 자유여행을 가야 한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또 다낭이라는 여행지의 특수성도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다시 말한다. 조금 더 멀리 떨어진, 한국인이 덜 찾는, 좀 더 자유도가 있는 상품을 선택한다면 나와는 다른 경험과 감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 다낭에서의 경험은 재밌고 새로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콘텐츠 그 자체이기 때문에 별개의 이야기라서, 시간이 되면 따로 글을 쓰겠다.

어쩼거나, 3박 4일의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두근두근 했던 것은, 옵션 상품 관광을 선택하지 않아 얻어낸 자유 시간에서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가 그 현지인 택시 기사와 얼렁뚱땅 대화 한 모먼트였다는 것. 물론 아름다운 것 진귀한 것을 보기도 보았지만 그 72시간이 넘는 체류기간 중 가장 마음에 울림이 있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그 15분 남짓한 드라이브에서 택시기사와 나눈 다낭이란 도시에 대한 대화, 궁금한 걸 물어봤던 대화, 번역기를 써서라도 우리와 대화하려는 성의를 보였던 그 젊은이의 마음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