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Room

20220203-04

일기

03.

 

2022년 설이 끝났다.

다이어리를 펼치다 2021년 새해 목표를 적어놓은 걸 보게 되었다.

아, 또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내 인생에 대한 미안함이.

EXP는 더 나은 사람일 수 있는데. 가진 게 많은 걸 아는데

내 인생의 주인이 EXP라서 미안해.

 

난 많은 걸 가졌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해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Talent의 어원은 '돈'을 뜻한다고 한다. 가진 걸 이용해 결과를,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재능이라는 거겠지.

이걸 이용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는 사실 가진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해야한다. 느껴야 하고, 기록해야 하고, 가꾸어야 한다. 창조.

그냥 재미가 아닌 '나'의 정수를 담은 것을 고찰하고 만들고 싶다.

내 안에서 시작된 질문, 의문, 나만이 가지고 나만이 아는 무엇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한 해가 되자. 깊게 느끼자. 순간을.

사실 어떤 걸 새로이 숙련하거나 하지 않아도 내겐 이것만으로도 아주 큰 수확일 것이다.

매사에 진실하거나 진정성을 담긴 어렵더라도 매사의 나를 바라보자. 권태를 느끼면 권태 느끼는 나를 바라보자. 휘발적이면 휘발적인 나를 바라보자.

현재 나의 삶엔 좋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정신적인 바람이다.

내가 배고 내 인생이 바다라면, 바람이 불어와 나를 떠미는 게 아니라 시야를 가린 해무와 어둠을 걷어내주고 있는 느낌이다.

 

언제나 소중함을 생각하며 잃을까, 낭비일까, 최선이 아닐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냥 순간의 주어지는 것들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만으로 순간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열정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가고파. 오감과 사고를 열자.

 

2022년 2월 3일 새벽.

 

 

04.

 

2022년 2월 4일 역시나 새벽.

새로운 기분이었으나 사실 운동적으로 바뀐 건 없는 하루였다. 직장에선 딴짓을 했고. 아침엔 늦잠 잤으며. 집에 와선 휴대폰만 했지. 하고자 했던 일의 반도 못 했다. 사실 그냥, 똑같은 하루였다. 운동적으로는.

 

나의 기분은 좀 달랐다. 일 때문에 짜증나고 긴장되는 순간은 있었지만 에너제틱했고 풍성했고 감수성있었고 무언가 하고자 하는 기분으로 가득했다. 해서, 남기고 싶다. 틱틱붐 OST의 Louder than Words를 듣고 렌트 OST Seasons of Love를 들었다. 만원 버스에서 저런 곡들을 들으며, 내가 탄 이 버스 안의 말 없고 요동 없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상상해보았다. 다들 얼마나 풍부하겠어. 모두 자신의 삶이 있고 거기엔 출퇴근길의 회색빛 얼굴이 아니라 온갖 감정과 사건들로 알록달록한 색이 가득하겠지. 그 기분을 새기며 밖을 바라보자 재미없는 한국의 아파트도 다 풍성하고 예뻐보였다. 그 네모 칸칸마다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오로라빛 반짝이는 액체로 건물에서 넘쳐 흘러 나오는 것 같았다.

 

How to measure a year?

How about LOVE?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시간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되는 너무나 좋은 노래. 내가 좋아하는 게 많고 그것들에 열중하고 있지만 다른 형태의, 손에 닿고, 내가 아니면 안 되고, 필터 없이 다가오는 그런, 새로운 사랑법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연애도 지금은 나쁘지 않다. 하고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행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왜냐하면... 나에게도 사랑이 왔으면 좋겠거든. 응. 나도 사랑을 받고 싶어. 내가 사랑을 줬을 때 그 대상이 변화하고, 반응하고, 그걸 보면 나는 사랑을 느끼는 거야. 내가 준 사랑이 내게 오는 사랑이 되는 거. 그래서 Love Yourself란 Love Your World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다가가야 세상이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올 것이며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아니더라도. 이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행해야 할 이유를 좀 더 찾아봐야겠다. 왜 이타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것도 온 힘을 다 해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