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술, 비혼, 굿닥터
일기벌써 9월. 시간 참 빠르다. 2021년도 4개월이 채 안 남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야 해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요즘 저녁에 집합 금지라 낮술이었다. 그렇게 마실 예정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잔뜩 마시게 되었다.
옛날엔 내가 술을 잘 하고 못 하고 상관 없이 그냥 술자리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마셔보니 이제 그것도 별로 아닌 것 같다. 나는 폭음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같이 마시는 사람들보다 느리게 취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취해서 헛소리 하는 걸 비교적 맨정신에 듣게 되는데 옛날엔 이게 웃겼는데 요즘엔... 차라리 바보같은 농담을 하면 좋겠거늘 취해서 존나 진지빠는 얘기 하니까 그냥 어쩌라고 된다. 그리고 취한 것 같지도 않은데 탈수는 오고 술냄새나고. 아무리 풀려봤자 나는 막내고. 장난으로라도 소주병으로 대가리 깨주는 제스쳐를 할 수 없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나는 한 번도 말 꺼내본 적 없는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좋은 사람을 붙여주겠다 한다. 내가 굳이굳이 내 나이를 핀잔 들어가며 만 나이로 밝히는 이유다. 아니 근본적으로는 나를 그런 물망에 올려놓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나는 씨발 정말 현실 남자한테 관심이 없는데 지들맘대로 나의 사소한 변화에 의미부여하고 해석하는 거 짜증난다. 나 아직 어리고 주변사람들도 나 어린 취급 해줬으면 좋겠다. 응석받이가 아니라 그냥 아직 아무것도 모를 때지, 생각해 달라고. 난 인생 설계 같은 거 없단 말이다.
나이 얘기 하자면, 내 나이는 참 애매해서 누군가는 하고싶은 건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하는 반면에 누군가는 또 위처럼 결혼이니 연애니 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연애에는 관심 없다. 가끔 상상은 하지만 글쎄 잘 할 자신이 없다. 서툴러서 상처주고 싶지도 않고 어리숙해보이고 싶지도 않다. 또 이 나이에 연애 했다가 얼레벌레 결혼하게 될까봐 걱정된다. 주변에서 얼레벌레 결혼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다. 여자가 아까운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왜 급 안 맞게 저런 남자를 만나? 왜 네 나이에 벌써 결혼을 해? 그렇게 사는 게 정말 행복해? 정말 저런 사람 사랑해? 평생 살아갈거야 그렇게? 혼자 살 때 누릴 수 있는 것보다 같이 살 때 누리는 것들이 진짜로 더 나아? 그게 진짜 너야? 이런 생각이 너무 들지 절대 입밖으로 꺼내진 않지만.
비혼에 대한 여러 찬양과 회의가 공존하는 시류인 가운데 나의 비혼 다짐?은 다짐이랄 것도 없고 그냥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결혼이 디폴트인 사회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게 어떻게 디폴트일 수 있지. 그렇게 크고 위험하고 중요한 일이... 당연히 혼자 살거나 미혼으로 사는 게 디폴트여야 한다. 결혼같은 중대사를 당연한 것으로 몰아가는 사회는 반성하라. 그리고 출산율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출산율이 떨어지니 어쩌니 하고 있지만 이 나라는 인구 좀 줄어야 한다. 그게 고령화와 같이 가서 문제긴 하지만 언젠간 지금의 신생아들이 노인이 될 날이 온다. 인구 한 이천만명 정도면 좋을 것 같다. 애초에 이 작은 땅덩이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점령하고 있다는 게 오바다. 땅의 자원과 같이 사는 동물들에게 죄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 빡빡하게 모여 사는 것은 사람들끼리도 스트레스다. 물리적 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한국이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못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규모 같은 건 떨어지겠지만 개인의 삶의 질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좀 더 인간으로 존중받겠지. 그리고 이렇게 서로 비좁게 사는데 별별 개또라이가 다 있으니까 사람들 성격도 날로 괴팍해지고 더 혐오를 쉽게 일삼는 건지도 모른다. 좀 객관적으로, 멀리서 현상을 바라보기가 힘들고 너무 가깝기에 전부 다 나에게 이득인지/피해인지로 계산된다. 대부분의 존재가 나를 기준으로 잠재적 이득이거나 잠재작 피해다.
요즘 동물의 숲은 손 놨고 대신 취미로 넷플릭스에서 굿닥터를 보고 있다.
미국드라마 장점 집중 안 해도 됨. 타임킬링으로서 훌륭하고 덕심 같은 걸 자극하지 않는다. 그냥 그래 적당히 재밌어서 좋다.
굿닥터의 좋은 점은 주인공이 자폐증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정확하고 솔직하고 남을 상처주지 않는 소통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말한다는 점이다. 나 또한 제법 자폐적인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남한테 참 상처주는 말을 쉽게 하기 때문에 굿닥터를 보면서 조금 배우는 게 있는 것 같다. 다음에 나한테 저런 상황이 생기면 어떠어떠하게 말 해야지, 하고.
프레디 하이모어는 잘생긴 얼굴이긴 한데 너무 사람이 착해보이기만 한다는 게 좀 그렇다. 그리고 영국애들은 이런 과 얼굴이 또 있는 것 같다 니콜라스 홀트랑 프레디 하이모어랑 닮았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