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Room

Feb. 2ndwk. 22.

일기

4. Fri.

틱틱붐 이상하게 진짜 좋은 영화다. 취향도 아니고 팬심때문도 아닌데 계속 생각나고 봐도 봐도 안 질려.

5. SAT

정말 왜 갑자기 꿈에 나왔던 걸까? 무의식이란 너무 무서워, 죄책감과 그리움이란 지독하다. 잘 지낼까? 어디에서 뭘 하고 살까? 나에 대해, 우리 가족들에 대해, 이 핏줄의 사람들에 대해... 그 애는 어떻게 느낄까?

6. SUN

운동 후 벌러덩 드러누웠을 때 심장박동이 온 몸을 꽝꽝 치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내가 지구의 중심이 된 것만 같다. 나로부터 모든 생명들이 살아가는 그 느낌. 그리고 몸의 빈 공간이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도 있다. 심장이 뛴다는 건 그게 가능한 공간이 있다는 거니까. 내 몸 안이 진공상태인 것 같은 느낌이 좋다. 그러면 숨은 벅차고 심장은 벌컥거리는데도 여유가 느껴진다. 뜨거운 안식이다.

8. TUE

오늘은 또 몇 번이나 휴대폰을 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려 했다. 뭐랄까 속고있다? 경도당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 세상이 내가 봐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지하철에선 맨눈으로 보이는 모습을 좀 기억해보려 했다. 그런데 이런 시도를 했던 만큼 휴대폰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9. WED


자유란 이런 걸까? 끊임 없는 관리 말이다. 꼭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 내가 쓸 수 있는 시간,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내 능력이 닿는 범위란 게 한정되어 있어서 그 안에서 최대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끊임 없이, 다 쓴 것은 버리고, 중요한 것만 남기고, 못하는 것은 포기하고, 그렇게 하여 빈 공간을 계속 쟁여둬서 언제든지 이 빈 공간을 필요로 하거나 원할 때 내어놓을 수 있는 상태. 그런 게 자유인 걸까?

10. THU


난시가 더 심해진 것 같다. 퇴근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밝았는데, 달이 두개로 나눠진 건 물론이고(왼쪽 눈 오른쪽 눈) 또 나눠진 데서 무슨 편광이 겹겹이 쌓여서 무슨 네조각, 다섯조각은 되어 보였다. 노안 오기엔 아직 젊지 않나? 휴대폰을 너무 많이 한 탓 같다. 하여튼 무서웠다. 맨눈으로 달도 제대로 볼 수 없다니... 시력강화 운동을 해야겠다.

11. FRI

마조성향?! 물론 그런 건 아니고 어쩌면 나 되게 demanding한 상황에서 더 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률이 오르는 타입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혼자 찾아서 해결하는 재미도 있었고 그리고 상대측의 개황당한 발언에 짜증을 내는 것도 나름 재밌었다. 어디 문제있는 거 아냐? 성격 왜이렇지? 근데 뭔가 이 정신없는 희열이란 게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 개빡센 삶의 형태가 잘 맞을지도. 근데 그러려면 이렇게 압박되는 상황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제일 잘 어기는 약속이 나와의 약속이다. 세상에서 제일 잘 보여야 하고 잘 해줘야 하는 사람이 나임에도 불구하고...

12. SAT


언실레 굿즈를 사기 위해 서울에 갔다. 이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의지를 실행시킨 건 오랜만인 것 같았다... 이젠 뭐 딱히 인터넷이라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버스에서 책을 읽으면서 갔는데 문득 주변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휴대폰을 하기보다는 창밖을 바라보거나 하고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언제 가도 서울 구도심은 좋다. 질릴 수 없는 느낌이 있다. 거대하고, 멀고, 뒤섞인... 상상이나 이미지의 대도시가 아니라 진짜 대도시 속에 있을 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풍경을 제공한다.